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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에 대한 옛 추억 한 토막 by 면도날 면도날 | 2005-02-07 오후 4:10:12 조갑제는 부산수산대학을 다니다가 개인 사정상 그만두고 (무슨 일로 대학교를 중퇴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고 그러한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고) 부산의 국제신문사에 입사해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1980년 전두환 군사깡패독재정권에 의해서 그 신문이 강제로 폐간되면서 졸지에 '산업예비군'(실업자 혹은 백수)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조갑제는 1981년인가에 창간된, 지금은 없어진 월간 잡지인 『마당』이라는 잡지의 기자(취재부장과 편집장 역임)로 들어가서 아주 좋은 기사를 많이 썼었다. 내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당시 마당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그 당시 마당 출판부에서 발행한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1979년 6월 금당골동품상 사장과 그 부인 그리고 운전기사를 납치해서 살해한 박철웅이란 사람이 사형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사형수인 자기를 정신적으로 돌보아 주어서 결국 맑은 영혼을 간직한 채 회개한 인간으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일종의 '호스피스'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여자 신앙인과 편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남긴 이른바 박철웅의 '자전적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이러한 편지를 발굴해서 세상에 나오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 당시 마당 기자였던 조갑제였다. 이 당시 조갑제는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훌륭한 기자였다. 정의감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투철한 기자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발로 뛰면서 '팩트(사실)'를 직접 눈으로 귀로 확인하면서 기사를 썼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많은 기자들은 제대로 '팩트'도 확인을 하지 않고 대충 기사를 쓰곤 하였는데 비하여(지금도 그 따위 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얼빠진 기자들도 만만치 않게 있는 것 같지만) 그는 '기자 근성'을 발휘하면서 직접 발로 뛰고 '팩트'를 확인하면서 탁월한 기사를 많이 썼기 때문에, 그의 형편없는 '대학교 학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출신이 득시글거리는 조선일보로 나중에 스카웃 되어 간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가 조선일보에 스카웃 되어가서 배치된 곳이 바로 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팩트'를 확인하면서 기사를 쓸 수 있는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월간조선이다. 월간조선에 실린 하나의 탁월한 기사를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몰래 거래되고 있는 마약(향정신성 의약품)인 '히로뽕(필로폰)'과 관련된 『코리언 커넥션』이란 기사이다. 이 기사는 나중에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지금은 잊어진, 노무현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정치 생활을 마감한 차떼기당인 한나라당의 '얼간이' 국회의원이었던 왕년의 영화배우 (강)신성일이고. 검찰과 경찰의 마약 단속반과 함께 행동하면서 밀착 취재하여 작성한 이 기사는 마치 비디오로 촬영한 듯이 사실적으로 작성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기사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히로뽕 주사를 맞고 남자들과 밤새도록 섹스를 한 여자가 경찰이 들이닥쳐서 체포를 하려고 할 때 그 경찰에게 한 번만 더 섹스를 해달라고 한 장면이다. 히로뽕은 헤로인이나 코카인이나 아편과는 달리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마약이 아니라 그 유사한 물질인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가 되어 있고 그 법에 따라 처벌을 받고 있는데, 이것을 주사로 맞으면 정신을 말똥말똥 하게 해주어서, 이른바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각성 작용을 발휘하게 해 주면서 남녀가 밤새도록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물질이라는 것을 나는 그 당시의 조갑제가 취재 작성한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박정희의 아들인 박지만이가 즐겨 애용했다가 쇠고랑을 몇 번 차고 교도소와 마약치료감호소에 들락거리게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히로뽕 복용 때문이다. 박지만은 그랜저를 몰고 영등포역 집창촌을 들락거리며 히로뽕을 맞아가면서 거기의 여자들과 섹스를 즐기다가 검거되기도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도 있었다. 그럴 정도로 히로뽕은 심신을 결국 황폐화시키는 악마의 물질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사실에 입각한 생생하고 역동적인 기사를 많이 썼던 조갑제는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의 취재원 등을 통해 남북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남보다 먼저 입수해서 탁월한 기사를 쓰는 등 맹활약을 했지만,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 혹은 본색을 들어내면서 수구꼴통화했던 것이다. 영남 출신인 조갑제가 원래부터 보수적인 성격을 타고나서 그런지 아니면 그의 별 볼일 없는 대학교 학벌에도 불구하고 '대'조선일보의 자회사인 월간조선의 사장 겸 편집장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자신이 피눈물나게‘노력해서’획득한 '돈과 언론권력과 지위와 명예'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보수를 넘어서 수구꼴통적으로 변모했는지를 내 알 바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학벌이 얼마나 맹위력을 떨치고 있나를 생각해 보라. 노무현대통령도 그 놈의 학벌 때문에, 일단 정책적인 면에서의 실책을 떠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는지도 같이 생각해 보라. 그러면 언론계의 조갑제나 정치계의 노무현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신화'를 이룩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대통령은 상고 출신인데 반하여, 조갑제는 대학교 학벌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학벌은 부산과 경상남도를 통틀어 경남고와 쌍벽을 이루고 있던,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일류 인문계 고등학교인 부산고 출신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어쨌든 지금 그는 대한민국 공화국을 왕조시대나 박통이 지배를 했던 1970년대의 조폭시대인 '겨울공화국'으로 되돌리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정신나간 미친 짓을 하고 있는 신문사의 고위 간부 회사원으로 전락했다. 즉, 그는 조선일보라는 '조폭신문'에서 방회장의 충실한 종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새끼 조폭두목'으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을 평가할 때는 젊은 날의 행적이나 업적이 아니라 그의 인생 후반기를 보고 평가하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판단하기에는 조갑제는 그의 젊은 시절에 이룩한 '훌륭한' 업적을 다 까먹고 마치 '공들여 쌓은 탑'을 삽질을 넘어서 포크레인질로 가볍게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자기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소위 언론인이라는 조갑제,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소설가인 이문열, 콧수염의 싸나이 김동길, 노동 운동가였던 김문수와 이재오. 젊은 날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우리가 특히 젊은이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그리고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전형적인 인간 군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2005년 2월 7일 면도날 올림 [조갑제의 학력과 경력 (엠파스와 조갑제 홈페이지 참조)] 학력 1962년: 부산중학교 졸업 1965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67년: 부산수산대학 중퇴 1997년: 하버드 대학 1년 연수(니만 펠로우) 경력 1971년: 부산 국제신보(나중에 국제신문으로 제호 변경) 수습기자를 거쳐 문화부, 사회부 기자 1981년: 월간 마당 편집장-취재부장 1983년: 조선일보 월간조선 기자 1987년: 조선일보 월간조선 차장 1993년: 조선일보 부국장대우 월간조선 부장 1994년: 관훈클럽 편집위원 1995년: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 겸 월간조선 부장 1998년: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 겸 월간조선편집장 2001년: 조선일보의 독립법인화에 따라 편집장 겸 대표이사 -------------------------- |